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이누족 차별하는 일본 사회 현실

by 뉴이2 2026. 2. 28.

아이누족 차별하는 일본 사회 현실

일본의 소수 민족으로 알려진 아이누족.

이들은 오랜 세월 차별, 배제를 겪었다.

지금 시기 일본 사회.

이런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일본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

그것은 기원전 400년에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원전 400년, 이때 일본보단 한국이 훨씬 더 앞서 있었다.

한국은 농업을 일찍 시작했고 금속 기술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저 때 쌀농사를 짓지 않았고 금속 기술조차도 없었다.

일본은 당시 수렵 채집 사회였다.

저 때 기준 규수에 농업이 전파됐다.

이것은 일본 전역으로 확산하게 된다.

일본 농업 전파 이유

크게 두 가지로 추려진다.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이 농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일본인은 그때 한국인의 후손이다.

현대 일본인은 홋카이도 아이누인의 후손이다.

한반도 농업 기술을 배워서 농업을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2번째 설을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건 틀린 사실이다.

왜냐면 일본인의 조상이 한국인이란 사실.

이것은 과학적인 증거가 차고 넘쳐서 그렇다.

또한 고고학적인 증거 역시도 많다.

예로 무덤, 항아리, 거울 등이 그렇다.

결론

일본의 농작물, 동물, 농업 기술.

이건 다 한국에서 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유전자적인 부분에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은 가장 가깝다.

규슈의 일본인은 사실상 한국인이라고 보면 된다.

정작 일본에선 이런 내용의 강연을 하면 불쾌해한다.

그러나 일본의 유전학자들이 시행한 연구.

여기에서도 연이어 증거가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 2003년 일본의 돗토리 대학 다카오 교수 팀의 연구.

여기에 따르면 일본인은 한반도인의 후손이며 DNA 입증이 됐다.

일본의 뿌리는 한반도 혼혈이란 게 밝혀졌다.

정리

기원전 400년 시기 한국인이 일본 규슈로 이주.

벼농사를 지으면서 정착.

많은 자손을 낳으면서 열도 북쪽까지 진출했다.

일본의 토양은 비옥하고 농업 생산성이 좋으며 이것이 근대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홋카이도 아이누족

이들은 19세기 중반까지 사람의 땅이라고 부르던 일본 북부.

이곳에 있는 홋카이도랑 아키타현 비롯.

러시아 사할린처럼 커다란 섬 곳곳에 독립적인 공동체를 일구면서 지냈다.

본토 막부 지배 계급은 신분 사회였다.

아이누족은 경계 밖의 낯선 이들로 여겨진다.

경제와 군사력 측면에선 비교 불가능이었다.

침략 시작이 된 것은 메이지 유신 때 일본의 봉건 사회가 근대 국민 국가로 이행돼서 그렇다.

일본인은 근대화가 된 문명인을 자처했다.

이들은 서양인 방식을 적극 수용한다.

일본은 지난 1869년, 사람들의 땅 아이누모시르.

여기를 홋카이도라고 명명한다.

지난 1871년 들어선 아이누족의 종교 활동과 전통문화를 금지한 정책을 펼친다.

지난 1899년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 전역을 점령한다.

이들은 구 원주민 보호법을 제정.

아이누족을 외국인이 아닌 옛 원주민으로 규정한다.

20세기 초 아이누 사람들의 강제 이주가 이뤄진다.

이들의 조상이 대대로 지내던 땅과 질서는 부정된다.

일본인은 아이누족한테 빚을 강제로 지게 한다.

그리고 상황금 대신 영구 임대와 일본어를 읽을 수 없는 아이누인.

이들을 술에 취하게 해선 토지 계약에 막무가내로 서명하게 한 방식을 통해 쫓아낸다.

'적자생존 원리. 이것에 의해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월한 종족. 이들은 성공하며 열등한 종족은 소멸한다. 요즘 아이누족 토착민의 사례에서 이걸 분명히 알 수 있다.'

이건 지난 1886년 9월 3일.

일본의 하코다테 신문이 낸 보도다.

일본의 제국주의 연구자 마크 피터.

그는 이때 일본 정책을 이렇게 평가한다.

"정착 식민지 건설에 대한 실제 경험을 미리 제공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이 홋카이도를 점령한 사례.

이걸 토대로 조선과 대만과 필리핀과 미얀마 등의 다른 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단 것이다.

일본은 지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아이누족 발언권을 제한했다.

이에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과 경험이 20세기 내내 주목받지 못한다.

지난 2017년 아이누 생활 실태 조사 결과

아이누 인구는 약 1만 3천 명.

4년 전 대비 4천 명이 줄어들었다.

이건 홋카이도 한정 조사다.

또한 아이누 협회원이 감소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사회다.

그런데 아이누족이란 정체를 밝히면 온갖 차별을 당하게 된다.

지난 2007년 유엔 총회에서 원주민 권리 선언이 채택될 때 일본 정부는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 2019년 4월 국제적인 압력 속에 이뤄진 아이누 정책 추진법이 통과된다.

아이누족은 원주민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는 아이누족에 대한 불평등 관련.

실질적인 개선과 역사적인 공유 자산에 대한 인정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2020년 7월 일본 정부는 우포포이에 아이누 민족의 박물관과 테마파크를 연다.

하지만 아이누족 활동가는 이것을 공동체에 대한 모멸로 인식하고 있다.